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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형폐지특별법안 시기상조인가

201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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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칼럼]

사형폐지특별법안, 시기상조인가


  사형제도의 존치를 놓고 찬반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지난해 12월 9일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을 비롯한 여야 의원 175명의 서명을 거친 사형폐지특별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이 법안은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가석방이나 감형 없이 수형자를 사망할 때까지 교도소에 수감하는 종신형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의 이러한 움직임과는 달리 사형폐지특별법안이 제출되던 바로 그날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는 경찰관 2명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사형이 선고되었고, 그로부터 4일 뒤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11개월 동안 노인과 부녀자 등 무려 20명을 살해하고 사체 11구를 토막내 암매장한 희대의 연쇄살인범 유영철에게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그 다음날에도 창원지방법원에서는 30년 전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사형수가 대학교수의 도움으로 석방된 뒤 자신의 감형과 석방을 도왔던 대학교수를 살해한데 대하여 사형이 선고되는 등 사형제도를 둘러싼 정치권의 움직임과 법원의 판결이 전혀 상반된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사형제에 대한 찬반 논쟁이 한층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사형제도 폐지는 1764년 베카리아(Cesare Beccaria 1738~1794, 계몽시대를 대표하는 이태리의 형법학자)의 ‘범죄와 형벌(Dei delitti e delle pene)’에서 처음으로 주장된 이래, 오랜 기간 사형에 관한 찬반 논쟁이 이어지면서 어느 쪽이든 각자 나름의 확고한 논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사형폐지 논의가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지만, 우리를 비롯한 아직까지 많은 나라에서 그동안 해결하지 못하고 있던 오래된 과제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던 것이 17대 국회 들어 과거 일부 정치권과 종교계, 시민단체, 법조계 일각에서 제기되어 오던 사형폐지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였으나, 지난해 무려 20명이나 되는 사람을 연쇄 살해한 유영철 사건이 보도되면서 사형폐지론에 심각한 제동이 걸리기도 하였다. ‘100명을 죽이려 했는데 시작단계에서 검거되어 아쉽다’는 유영철의 법정진술은 시민들을 경악하게 하기에 충분했고, 사법 사상 유래를 찾기 힘들 이 연쇄살인사건을 놓고 네티즌들은 사형 여부를 놓고 뜨겁게 설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형벌의 역사

  사형은 그 역사를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된 형벌로서, 세계 최초의 법률 가운데 하나인 함무라비법전에도 사형 규정이 발견된다. 그런데 과거 절대군주제하에서 사형은 단순히 생명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잔인한 방법으로 범죄자의 신체에 고통을 주고 또 그것을 공개함으로써 군주의 절대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끔찍한 단두대(Guillotine) 조차도 고통 없이 사형을 집행할 수 있도록 고안된 인도적인 도구로 인식되었던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던 것이 18세기 중반 계몽주의 사상의 태동과 함께 그동안 징벌과 제거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범죄자의 신체와 생명도 존중되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고, 법관에 의한 자의적인 형벌과 잔인하고 야만적인 처벌방식에 반대하며 형벌제도의 개혁을 주장한 베카리아나 벤담(Jeremy Bentham)의 등장은 당시로서는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베카리아는 ‘범죄와 형벌’을 발표하면서 이름도 밝힐 수 없었고, 서두에는 무신론자나 혁명가가 아니라는 변명까지 해야만 했던 것이다.

  한편,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후기 구조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철학자)는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에서 형벌체제가 신체 자체에 대한 형벌에서 권리를 제한하는 형벌로 변천되어 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즉, 과거에는 공개적으로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잔혹스런 신체형이 형벌의 중심이었던 반면, 1789년 프랑스혁명을 전후한 계몽시대를 거치면서 신체형 대신 신체에 대한 권리를 정지시키는 감옥 중심으로 형벌체제가 바뀐다는 것이다. 18세기 이전의 형벌은 절대권력이 비밀리에 이루어진 재판 결과를 가지고 공개적으로 범죄자의 신체에 잔혹한 형벌을 가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자 했던 축제의 양상과도 같은 의식(儀式)이었으나, 프랑스혁명을 전후한 시기에 이러한 처벌의 축제가 종종 죄인이 영웅시 되고 권력이 농락당하는 폭동의 장(場)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자, 처벌 형식이 신체의 자유를 정지시키는 감옥 중심의 비공개형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대신 국가는 재판과정을 공개함으로써 규율과 통제라는 사법의 그물망이 빈틈없이 작동되고 있음을 일반에 알려 어떠한 범죄도 반드시 처벌된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으로 형벌체제를 바꾼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일부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태형이나 신체절단형과 같은 형벌이 존속되고 있는 극단적인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셸 푸코가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형벌의 역사는 신체형에서 자유를 제한하는 형벌로 변천되어 왔다. 그 결과 현대국가에서의 형벌체제는 신체의 자유나 재산권을 제한하는 형벌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불과 1~2세기 전까지만 해도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던 신체를 대상으로 하는 형벌, 즉 신체형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형이 존재하는 한 신체형이 전부 사라졌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사형은 범죄자의 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형벌이라는 점에서 신체형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의 경우만 해도 고조선의 팔조금법(八條禁法)에 ‘살인자는 사형에 처한다(相殺者以相殺)’고 함으로써 사형제도가 인정된 이래 1894년 갑오경장 때 칙령 30호로 능지처참형과 참수형은 폐지되었지만, 현재까지도 사형은 그 집행방식만 교수(絞首)로 바뀐 채 여전히 형벌의 하나로 존속되고 있는 것이다.

  시기상조인가

  우리 헌법재판소는 1996. 11. 28. 헌법재판관 7:2 의견으로 살인죄에 사형을 규정하고 있는 형법규정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즉, 형벌로서의 사형 그 자체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으며, 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살인죄 속에는 행위의 태양이나 결과의 중대성에 미루어 반인륜적 범죄라고 규정지워질 수 있는 극악한 유형의 것들도 포함되어 있고, 범죄자의 생명과 그 가치가 동일한 하나 또는 다수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으로 타인의 생명을 부정하는 범죄행위에 대하여 사형을 규정한 것은 잔인하고 이상한 형벌(Cruel and Unusual Punishment)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헌법재판소는 앞으로 시대상황이 바뀌어 사형이 갖는 범죄예방의 필요성이 거의 없게 되거나 국민의 법감정이 그렇다고 인식하는 시기가 되면 사형은 곧바로 폐지되어야 할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아직은 사회적 여건이나 국민적 합의(Consensus)의 면에서 사형을 폐지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말이다.

  17대 국회 들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가장 근본적인 논거는 이 법이 과거 국가권력에 의하여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과 자유를 박탈하는 수단으로 남용되었다는 것이다. 사형제도가 국가권력에 의하여 정적(政敵)의 목을 향한 단두대로 활용된다면 실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우리에게는 과거 제3대 대통령선거에서 200만표가 넘는 지지를 받았던 죽산 조봉암 선생이 1959년 국가보안법위반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끝내 단두대를 피하지 못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한때 광주사태에 연루되어 내란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사형수는 그후 대통령이 되어 국민의 정부를 이끌었고, 사형폐지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한 유인태 의원 또한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일이 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사형제도가 국가권력에 의하여 정적(政敵)을 향한 단두대로 사용되었던 역사적 경험이 있으며, 결과적으로 당시의 사회적 여건이나 국민적 합의로는 이러한 사태를 막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만의 하나라도 권력에 의하여 사형제도가 자의적으로 남용될 가능성이 있다면 이런 위험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사형제도는 마땅히 폐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법원행정처에서 매년 발간되는 사법연감 통계에 의하면, 2002년 한해 동안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된 사례는 7건이고 2003년에는 총 5건 뿐이라는 것이어서, 일반 형사사범에 사형이 선고되는 사례는 극히 한정된 경우에 불과하고, 그간의 실증적 연구 결과에서도 사형에 따른 범죄예방의 효과는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근본적으로 형벌제도는 인간에 대한 긍정을 기초로 하는 것이다. 반면 사형은 인간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며 보복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는 좌우로 나뉜 편가르기 속에 대화나 타협은 이미 실종된 지 오래고, 정치권은 국가보안법의 존폐 등을 놓고 끝이 보이지 않는 정쟁 속에 정치(正治)가 되어야 할 정치(政治)는 상대를 향한 정치(征治)로 변질된 상태이며, 더욱이 최근 ‘간첩이다, 고문조작이다’ 하며 여야가 사생결단하는 모습에서 보듯이 아직도 우리 사회는 과거 권력의 칼을 휘두르던 측과 그 칼에 휘둘리던 측이 서로 칼끝에서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와 같이 현재의 정치상황이 과거와 별로 달라진 것도 없이 사사건건 상대를 부정하며 응징하려 한다면 사형제도는 여전히 권력의 손에 쥐어진 위험한 칼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고, 일반 형사사범에 대한 사형의 범죄예방 효과 마저 부정적인 것이라면 지난해 사형폐지특별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은 시기상조가 아니라 너무 때늦은 감이 있다.
 

변호사     오     종     윤

- 댄스스포츠코리아  2005.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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