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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매매특별법 시행에 부쳐

201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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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칼럼]
성매매특별법 시행에 부쳐

  지난 9. 23.자로 성매매특별법의 시행에 들어갔다. 일반적으로 성매매특별법이라고 알려진 이 법은 두개의 법률로 제정되어 있으며, 그중 하나는 성매매를 단속하고 규제하기 위한 법률이고, 다른 하나는 성매매자의 보호와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이다. 그런데 특별법 시행과 더불어 정부가 강력한 단속의지를 보이자, 정작 특별법으로 혜택을 입게될 것이라 여겨지던 매매춘 종사자들이 여기에 박수를 보내기는커녕 연일 거리로 쏟아져 나와 법 시행에 반대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한걸음 더 나아가 “매매춘을 직업으로 인정해 달라”며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법의 시행을 두고 여성계나 일부 시민단체 등 사회 일각에서는 차제에 집창촌(集娼村) 등에 대한 강력한 단속활동으로 매매춘을 아예 뿌리뽑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이에 반하여 다른 일각에서는 집창촌에 대한 마구잡이식의 단속은 결과적으로 매매춘을 더욱 음성화시켜 사회 전체를 오염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냄으로써 요즈음 우리 사회는 때아닌 매매춘 공방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러면 매매춘이란 무엇일까. 전통적으로 매춘의 개념에 관하여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인식되어 왔으나, 매매춘은 성행위에 대한 대가(代價)라는 측면에 중점을 둔 개념으로 새로 시행된 특별법에서도 금전적 대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말하자면 대가의 약속과 함께 성(性)을 제공하는 이른바 상업적 섹스는 특별법에 의하여 단속과 처벌의 대상이 되고, 결과적으로 상업적 섹스가 이루어지는 집창촌은 주요 단속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여성들이 매매춘에 빠져드는가. 왜 집창촌 여성들이 특별법 시행에 반대하며 거리로 뛰쳐나왔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어찌보면 간단할지 모른다. 매매춘 종사자들이 집창촌에 모여 상업적으로 성(性)을 제공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적인 필요 때문일 것이고, 반면 그들에 대한 보호와 자립을 위하여 마련된 특별법으로는 그들이 원하는 경제적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적 여건이 만족할 만큼 개선되기만 하면 우리 사회에서 매매춘이 근절될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인류와 함께 매매춘이 역사상 끊임없이 존속되어 올 수 있었던 데에는 단순히 경제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매매춘, 그 규제와 방임의 역사
  매매춘은 인류의 생성과 더불어 존재해 왔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기원전 그리스 시대의 유녀(遊女) 포르노이(pornoi)가 오늘날 매춘여성의 기원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기원전 그리스 시대에는 모든 여성들이 일생에 적어도 한번 이상은 바빌론에 있는 이시타르신전에 가서 낯선 남자와 성관계를 가져야 하는 종교적 관습이 있었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매매춘은 매우 보편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의 정치가 솔론(Solon)은 개혁입법을 통하여 최초로 매매춘에 대한 통제정책을 실시하고 등록하지 않은 매춘은 불법으로 처벌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매매춘에 대한 인류의 역사는 규제와 방임이라는 이중규범(double standard)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적 금욕주의하에서도 매매춘은 남성들의 성적 욕구로부터 정숙한 아내와 딸을 보호해 주는 매우 유용한 방어장치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정숙한 귀부인의 매매춘은 금지되지만 거리의 여인(whore)에 의한 매매춘은 허용되었으며, 성병이나 인신매매 범죄에 대한 효율적 통제라는 명목으로 특정지역에서는 매매춘을 허용해 주되 허용지역을 벗어난 매매춘은 규제하고 단속하는 등 표면적으로는 매매춘을 금지와 규제의 대상으로 선언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필요악’이라고 치부하며 묵인과 방임으로 일관하는 이중규범적 태도를 지녀왔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우리의 경우에는 어떤가. 유교적 지배원리로 성(性)을 입에 담는 일이 절대적 금기(禁忌)로 여겨지던 조선시대에도 관기(官妓)나 여사당패, 색주가(色酒家) 등의 형태로 하층민에 의한 매매춘은 당연시 되었다. 물론 조선 초기 어우동과 감동(甘同)의 성(性) 스캔들로 조선정국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 있기도 하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지체높은 사대부 가(家) 여인이 스캔들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지, 매매춘에 대한 규제나 단속이 논의되었던 것은 아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노비제도가 폐지되면서 관기들이 법적으로는 신분적 속박에서 벗어났으나 생업수단인 매매춘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였고, 한일합방 직후 일제의 허가제 시행과 더불어 매매춘은 권번(券番)이라는 대규모 유곽(遊廓)의 형태로 존속해 오던 것이 미군정에 의한 공창제도폐지령과 5.16 직후 발효된 윤락행위등방지법에 의하여 법률상으로는 우리사회에서 매매춘이 사라졌던 것이다. 그러나 미아리 텍사스나 청량리 588과 같이 웬만한 도시의 허름한 뒷골목 저편 어딘가에서 매매춘은 규제와 방임이라는 이중규범의 틀 속에 아슬아슬 곡예를 하듯이 엄연히 존재해 왔으며, 우리의 잘못된 음주문화와 함께 점차 확산의 길을 걸어왔다.

  단속 보다는 지원이 우선돼야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매매춘 마저도 자본가에 의한 성(性) 노동력의 착취로 여겨 공산주의가 완성되면 매매춘도 자연 사라질 것이라고 호언하였으나 소련에서 매매춘이 사라졌다는 보고는 없으며, 사회보장제도가 발달된 선진 서구유럽국가에서 매매춘이 없어진 것도 아니다. 여성들이 매매춘에 빠지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적 필요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반면 남성들은 본능적인 성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또는 새로운 성적 모험을 추구하기 위하여 대가를 지급하고서라도 기꺼이 성(性)을 구매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남성들의 성(性)에 대한 수요가 있는 한 경제적인 필요에 의해서든 그 밖에 다른 요인에 의해서든 자발적으로 성(性)을 제공하고자 하는 여성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야말로 인간의 성적 욕구가 사라지거나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도 원하는 만큼 성(性) 파트너를 자유로이 만날 수 있는 때가 되지 않는 한 매매춘은 계속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가설(假說)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게 될 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20~30대 여성의 4.1%가 성매매에 종사하고 있으며, 성(性) 산업 규모가 연간 24조원에 달할 정도라는 최근 통계를 보면, 정부가 이제라도 매매춘을 근절시키겠다며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진다. 다만 매매춘에 대한 단속 일변도의 정책은 자칫 매매춘 종사자들에 대한 혐오주의를 부추기고 전과자로 낙인(Labeling) 시킴으로써 사회로부터 더욱 소외당하고 격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 마저 배제할 수 없다.
  매매춘은 그 부정적인 장구(長久)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 중의 하나로 존속해 왔으며, 1949년 국제사회에서 폐창(廢娼)협약이 있은 이후에도 매매춘 페미니스트들은 1986년 브뤼셀에 모여 ‘노동자로서 노동조합을 설립할 권리가 있다’고 권리선언을 하였을 정도로 서구에서는 유력한 직업 중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임을 감안하여, 기왕이면 성매매특별법 시행에 반대하며 거리에 쏟아져 나온 매매춘 종사자들에게 강력한 단속 일변도의 정책을 실시하기 보다는 실효성 있는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그들이 실질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 정부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라 할 것이다.

 

변호사     오     종     윤


- 댄스스포츠코리아 2004.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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